• 최종편집 2024-04-23(화)
 
[강원뉴스]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는 현충사가 중건된 지 9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에 이충무공의 묘소와 위토를 되찾기 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펼쳐졌던 모금운동에 동참한 2만 여명에 달하는 성금기탁자들의 후손을 찾는'이충무공 유적 보존 민족성금 후손 찾기 운동'을 6월 5일부터 12월 31일까지 전개한다.

이를 위해 현충사관리소는 누리집에 6월 5일부터 12월 31일까지 당시 모금에 참여한 성금기탁자 2만 여명과 400여 단체의 이름과 지역 정보를 공개한다.

자신의 조상이 모금에 동참한 경우 누리집에서 기탁자 이름과 일제강점기 당시 기탁자가 살던 지역명 등을 같이 확인한 후 재적등본이나 족보 등의 입증서류를 제출하면 현충사관리소는 확인과정을 거친 후 문화재청장 명의의 감사패와 함께 오는 하반기(10월)에 예정된 현충사 중건 90주년 문화행사에 초청할 계획이다.

참고로, 현충사는 1706년(숙종 32년)에 처음 세워졌으나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일제강점기인 1932년 민족적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온 겨레의 민족성금으로 중건된 바 있다.

1930년대 초 이충무공 묘소와 위토(제사와 관련 경비를 충당하기 위한 토지)가 일본은행에 저당 잡혀 경매에 넘어갈 상황이 되자, 1931년 5월 13일자 동아일보에 "2천원에 경매당하는 이충무공의 묘소 위토”라는 제목의 기사와 다음날 민족지사 정인보의 "민족적 수치”라는 사설을 통해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정인보는 사설을 통해 "어찌 충무공의 분묘를 위함뿐이랴. 이것을 계기로 하여 우리는 일층 민족문화에 대한 숭앙심과 애착심을 불길질할 필요가 있다”라며 온 겨레가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후 1932년 3월까지 약 2만 여명의 사람들과 400여 단체가 성금모금에 동참하여 1만 6천 21원 30전의 민족성금이 모금되었고, 성금과 함께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각계각층의 애절한 편지글들이 전달되었다.

이러한 민족성금 모금을 계기로 이충무공유적보존회가 결성되어 모든 채무를 변제하고, 이충무공의 유적과 유물을 온전히 보호할 것을 결의함에 따라 현충사 중건 사업이 시작되었고, 1932년 6월 5일 전국 각지에서 약 3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낙성식과 영정 봉안식이 개최되었다.

이렇게 일제강점기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온 겨레의 민중운동으로 중건된 현충사는 지역과 신분, 직업과 빈부의 차이를 넘어 모든 국민이 숭앙하는 이충무공의 참모습을 탄생시킨 역사적인 장소다.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는 올해 현충사 중건 90주년을 맞아 역사적인 민중운동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그 진실한 뜻을 세대를 넘어 오늘날에 계승하고자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90주년을 맞아 펼치는 기념사업으로는 이번에 추진하는 민족성금 후손 찾기 외에도 ▲ 이충무공 유적 보존 관련기록물 국가등록문화재 등록, ▲ 현충사 중건 90주년 기념 특별전(4.28~ ), ▲ 후손 초청 문화행사 개최 등이 있다.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는 적극행정을 통하여 나라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희생하면서 국난을 극복했던 충무공의 정신과 일제강점기라는 암혹한 상황에서도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켜내고자 한마음으로 몸소 희생을 실천한 우리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이 이번 기념사업들을 통해 다시한번 되새겨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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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사, 이충무공 유적 보존 민족성금 기탁자 후손 찾기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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